한국침례교 역사와 신앙

2019년 4월 18일

한국침례교회 역사와 신앙

 

김용국(침례신학대학교 교회사 교수)

한국침례교의 역사 

말콤 펜윅의 선교활동의 시작

한국 침례교 역사는 26세의 캐나다 출신 초교파 평신도 선교사 말콤 펜윅(Malcolm C. Fenwick)이 1889년 12월 11일 부산항에 입항하면서 시작되었다. 펜윅은 서울과 황해도 소래에서 각각 10개월을 머문 후, 1891년 가을부터 함경도 원산에 정착했다. 목사안수를 받을 목적으로 1893년 봄에 도미하여 보스턴의 클라렌돈 가 침례교회의 아도니람 고든(Adoniram J. Gordon) 목사가 설립한 보스턴선교사훈련학교에서 약 1년 정도 공부한 후, 1894년 4월에 고든 목사의 주례로 목사안수를 받았다. 펜윅은 학업을 하는 동안 한국선교의 필요성을 개진하였고, 고든은 새뮤얼 씽 안수집사가 외동딸 엘라를 기념하여 세운 엘라씽기념선교회(Ella Thing Memorial Mission)를 통해 한국 선교를 하도록 했다. 최초의 엘라씽선교사로 에드워드 폴링(Edward Clayton Pauling)과 그의 약혼녀 마벨 발렌타인 홀, 여선교사 어맨더 개더라인(Amanda Gardeline) 등은 1895년 초에 내한하여 서울시 종로구 내자동 201번지에 1,000여 평 규모의 선교 본부를 마련하고 본격적으로 선교활동을 시작하였다.

  폴링은 강경 출신 포목장사꾼 지병석을 전도하여 1895년 여름에 한강에서 침례를 베풀었다. 폴링은 지병석의 권고를 받아들여 충청도로 선교지를 옮겼다. 1896년 4월에 프레더릭 스테드맨(Frederick W. Steadman), 새디 에클스(Sadie Ackles), 알마 엘머(Arma Ellmer) 등 제2진 엘라씽선교사들이 내한하여 강경, 공주, 칠산에 교회들을 세웠다. 서울의 침례교 선교 본부는 미남감리교 선교부가 매입하여 건물을 개조한 후, 1898년 10월에 배화학당을 시작하였다. 엘라씽선교회는 1901년 4월 한국 선교를 종료하고, 펜윅에게 재산과 사역을 이양했다. 펜윅은 신명균에게 충청도 사역을 맡겼고, 신명균은 놀라운 성과를 이루었다. 펜윅은 교회가 31개에 이르자, 1906년 10월 6일 강경교회에서 제1차 대화회(총회)를 열고, 대한기독교회를 조직하였다.

대한기독교회의 사역 및 활동

대한기독교회는 제1차 대화회에서 한태영, 유내천, 이자삼, 이장운, 장봉이 등 5명을 만주 선교사로 파송하는 등 선교를 최우선 사역으로 삼았다. 한편 시베리아 선교를 갔던 박노기, 김희서, 최응선, 전영태는 포세트 해의 모커우에서 돌풍으로 배가 파선돼 순교하였다. 남한에서는 충청도에 이어 포항과 울진에서 활발하게 포교활동이 이루어졌고, 특히 울릉도에 최초의 기독교회를 세우게 되었다. 대한기독교회는 1915년 일제에 「포교계」 제출 요구를 거부하였고, 그로 인해 박해를 받았다. 박해는 1919년 3·1 독립만세 운동이 일어난 후 해제되었다. 펜윅은 자신이 번역한 「신약젼셔」를 1919년 10월 18일에 출판하고, 성경읽기를 독려하였으며, 그 결과 대한기독교회 교인들은 성경을 200독에서 500독까지 하였다.

동아기독교회

교단은 1921년에 동아기독교회로 명칭을 바꾸었다. 계속된 전도활동은 많은 순교자들을 배출하였다. 평북의 자성군 일대에서 순회전도 하던 손상열은 일본군에 의해 1921년에 순교하였고, 만주 길림성에서 김상준, 안성찬, 이창희, 박문기, 김이주, 윤학영은 1925년경 한국 독립당원들에 의해 죽임을 당하였다. 만주 종성동교회의 김영진, 김영국, 정춘보는 1928년 9월 14일 밤 공산당들에 의해 살해당하였으며, 몽고 선교사 이현태는 1939년에 토족의 습격으로 죽임을 당했다.

동아기독대

1933년에 교단 명칭을 동아기독대로 바꾸었는데, 당시는 일제가 신사참배를 본격적으로 강화하던 때였다. 동아기독대는 신사참배를 우상숭배로 간주하고 확고히 반대하였으며, 그로 인해 김영관 감목을 비롯한 교단 지도자 5명은 원산경찰서에 구금을 당하기도 하였다. 신사참배 반대로 교단이 어려운 때에 펜윅 부부가 사망하였다. 펜윅의 아내 패니 힌즈는 1933년 1월 19일에, 펜윅은 1935년 12월 6일에 각기 주님의 품으로 돌아갔다. 교단은 1940년에 동아기독교로 교단명을 바꾸었다. 그즈음 소위 ‘원산사건’으로 불리는 교단 폐쇄 사건이 발생하였다. 1942년 우태호와 오문환은 동아기독교의 천년왕국 신앙을 문제 삼아 일본에 고발하였으며, 일제는 동아기독교가 신사참배와 황궁요배를 거부하고, 천황 모독죄를 지었다는 이유로 1944년 5월 10일 교단을 강제 폐쇄시켰다.

대한기독교침례회의 시작

1945년 8월 15일 해방 이후 재건된 교단은 열악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미남침례교회와 선교 관계를 맺는 일을 추진하였고, 1949년에는 교단 명칭을 대한기독교침례회로 바꾸었다. 남침례교회존 애버네티(John Arch Abernathy) 부부를 1950년 2월에 파송하며 본격적으로 한국 선교를 시작하였다. 남침례교 선교부의 구호사업과 의료선교는 전멸 직전에 있던 한국침례교회를 생환시키고 기적적인 성장을 가져왔다. 그러나 교단은 선교자금과 교권을 둘러싸고 파벌 간의 쟁투가 일어났으며, 그 결과 1959년부터 1968년까지 교단 분열의 아픔을 겪게 되었다.

교단은 1968년 4월 16일 서울침례교회에서 합동총회를 개최하여 9년간의 분열을 마감하고, 교단명칭도 한국침례회연맹으로 바꾸었다. 이즈음 성령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났으며, 침례교회도 성령운동을 통해 크게 부흥하게 되었다. 1970-80년대 도시들에 많은 침례교회들이 개척되었고, 남침례교 선교부는 이에 발맞추어 교회당 건축 지원과 총회 기관 육성에 박차를 가하였다. 총회는 1976년에 교단명을 기독교한국침례회로 변경했다. 교단의 급속한 성장은 1970년부터 1989년까지 약 20년 간 행해진 한미전도대회로 인해 가속화되었다. 그 결과 한국침례교회는 오늘날 한국에서 주류 개신교단이 되었다.

한국침례교의 신앙

한국침례교회는 성서적 보수신앙을 견지한다. 성경에 관해서는, 66권의 신구약 성경은 하나님의 특별계시로 영감 받은 오류 없는 말씀인 것과, 성경은 성령의 조명하심을 통해 올바로 이해될 수 있음을 믿는다. 신론기독론에 관해서는, 정통 삼위일체론과 기독론을 믿는다. 즉 삼위일체 하나님의 창조와 섭리, 하나님의 영적이고 인격적인 속성,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 동정녀 탄생, 대속의 죽음, 부활, 재림 등을 믿는다. 그리고 성령은 영적이며 인격적인 하나님으로 믿는다. 구원론에 관해서는, 개혁주의, 세대주의, 아르미니우스주의가 혼재되어 있다. 선교론에 관해서는, 직접전도를 강조하고 신약교회 건설을 선교의 목적으로 보는 보수적 선교관을 갖고 있다. 교회론에 관해서는, 신자의 침례, 중생자 교회회원, 회중주의, 정교분리, 상징주의 성례론 등 전통적인 침례교 교회론을 믿는다. 종말론에 관해서는, 다수가 전천년주의를 믿으나 무천년주의를 믿는 사람들도 상당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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