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진정한 사랑’

2019년 4월 18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진정한 사랑’

 

기민석(침례신학대학교 구약학 교수)

바울의 심각한 고민 이방인들을 향한 유대인의 적대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막 터진 샘물처럼 솟아오르던 때, 바울은 심각한 고민 하나를 에베소 교인들에게 털어놓았다. 자기와 같은 유대인 출신의 그리스도인들과 그렇지 않은 이방 그리스도인 사이를 가로 막는 ‘막힌 담’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지난날에 육신으로는 이방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명심하십시오. 손으로 육체에 행한 할례를 받은 사람이라고 뽐내는 이른바 할례자들에게 여러분은 무할례자들이라고 불리며 따돌림을 당했습니다. 그 때에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상관이 없었고, 이스라엘 공동체에서 제외되어서, 약속의 언약과 무관한 외인으로서, 세상에서 아무 소망이 없이, 하나님도 없이 살았습니다(엡 2:11-12).

당시 유대교인들의 성경에는 이방인에 대한 적대감이 날카롭게 적혀있었다. 특히나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이 아닌 다른 신을 따르기에, 이방인의 종교 문화에 매우 적대적이었다.

당신들은 당신들이 쫓아낼 민족들이 뭇 신을 섬기는 곳은, 높은 산이든지 낮은 언덕이든지 무성한 나무 아래이든지, 어느 곳이든지 다 허물어야 합니다. 거기에 있는 제단을 허물고, 석상을 부수고, 아세라 목상을 불태우고, 신상들을 부수고, 그들의 이름을 그 곳에서 지워서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게 하여야 합니다(신 12:2-3).

당시 유대인들의 성경을 지금 그리스도인들도 ‘구약성서’라 명명하여 진리의 계시로 따르고 있다. 위 말씀에 의거하여, 우리 기독교인들도 비기독교인이나 타종교인들에게 꼭 적대적이어야 할까? 그들도 하나님 은혜의 수혜자들이어야 하는 것 아닌가?

구약의 폭력성’ vs 신약의 희생

구약을 가르치다보니, 구약의 ‘폭력적’인 구절들에 대하여 참 많은 질문을 받는다. 나는 구약학자이지만, 그리스도인으로서 구약을 읽을 때에는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희생’의 조명으로 읽어야 함을 강조해 왔다. 구약은 반드시 신약의 빛 아래 새롭게 해석되어야만 한다. 선지자 예레미야도 새 법이 옛 법을 조명하게 될 것이라고 방향 제시를 했다.

그 때가 오면, 내가 이스라엘 가문과 유다 가문에 새 언약을 세우겠다. … 내가 이스라엘 가문과 언약을 세울 것이니, 나는 나의 율법을 그들의 가슴 속에 넣어 주며, 그들의 마음 판에 새겨 기록하여… (렘 31:31, 33)

쉽게 이야기하자면, 구약을 들먹이며 ‘폭력’과 ‘차별’을 정당화 하는 자가 있다면, 그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아니거나 무식한 자이다. 율법이 은혜로 감동 먹어 버린 지 아주 오래되었다. 구약은 원수를 죽이라고 말하지만, 신약은 원수도 사랑하라고 말한다. 분하고 못마땅한가? 남 잘되는 일에는 배가 아픈가? 그런데 우리 구주 예수께서는 우리들이 그 평화를 깨닫고 누리게 하시기 위해, 자기 자신을 희생하셨다고 바울은 설파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이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유대 사람과 이방 사람이 양쪽으로 갈라져 있는 것을 하나로 만드신 분이십니다. 그분은 유대 사람과 이방 사람 사이를 가르는 담을 자기 몸으로 허무셔서, 원수 된 것을 없애시고, 여러 가지 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습니다. 그분은 이 둘을 자기 안에서 하나의 새 사람으로 만들어서 평화를 이루시고, (엡 2:13-14)

예수께서 화평을 만드신 방법은 자신을 죽이는 것, 희생이었다. 모든 인간 사회에, 교회든 어떤 조직이든, 반드시 적용되어야 할 평화구축방법은 누군가의 ‘희생’이다. 이때 ‘누군가’는 누구여야 할까? 사회, 조직, 교회, 가족 안에서 누군가의 희생이 화평을 불러 올 수 있다면, 그 희생은 누구의 몫이어야 할까? 당연히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 나와 여러분이어야 한다.

희생을 통한 진정한 사랑

진정한 사랑과 스토킹의 차이는 쉽게 알 수 있다. 사랑은 상대가 원하는 방식대로 사랑하는 것이다. 자신의 방식은 일단 한 걸음 물러나야 한다. 상대방의 입장은 무시한 체 자기 방식대로만 사랑을 전하는 것은 범죄행위다. 그리스도인들이 비그리스도인들을 사랑하는 방식은 일방적이어서는 안 된다. 복음으로 협박하는 것, 교리로 정죄하는 것이 전도의 방식이어서는 안 될 것이다. 복음의 진리를 타협하라는 소리로 들리는가? 복음 전도는 당신의 목소리로 하는 것이 아니라 ‘희생’으로 하는 것이다. 진정 예수를 닮은 전도는 이웃 사랑이어야 할 것이다. 성경 몇 구절 읊어주고서 전도했다고 생각지 말아야 한다. 진정한 친구가 되어주지 않으면 전도한 것이 아니다. 말만하고 친구가 되어주지 않았다면, 그런 당신이야 말로 타협한 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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